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른스트 쿠초라 (문단 편집) == 여담 == * 레오 사우어라는 유대인 사업가가 쿠초라를 후원하면서 운전면허증을 따게 해주고 그의 기사로 취직시켜줬다. 덕분에 그는 광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스웨덴의 왕 [[구스타프 5세]]와의 문답. 왕: [[겔젠키르헨]]이 어디 있소? 쿠초라: 샬케에요. 왕: 샬케는 또 어디요? 쿠초라: 안네 그렌츠 거리에 있습니다. 폐하(...) * 상술했듯 [[오토 네르츠]]는 유기적 움직임을 중시하던 샬케 선수들이 자신이 선호하던 롱볼 전술과 맞지 않아 그들을 대표팀에 많이 뽑지 않기도 했지만 쿠초라만큼은 뽑지 않은, 아니 뽑을 수 없었던 다른 이유가 있다. 네르츠가 쿠초라에게 그는 독일 대표팀을 위해서는 열심히 뛰지 않는다고 비판하자 그에 대한 대답이 무려 ''''Sie können mich am Arsch lecken.(내 엉덩이나 핥으슈)''''(...) 그는 입으로 이런 대형 사고를 쳐놨다보니 그 뛰어난 기량을 갖고도 대표팀에서 완전히 배제됐고 월드컵에서 단 한 경기도 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일설에는 자신의 [[겹사돈]]이자 동료인 [[프리츠 스체판]]을 발탁하지 않아서 일부러 태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스체판은 나중에 실력을 인정받아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이탈리아 월드컵]]과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프랑스 월드컵]]에 주장으로 출전하였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 빌트에 따르면 샬케의 전 회장, 귄터 아이히베르크는 해외에 휴가를 가서 쿠초라의 장례식에 제때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 아이히베르크가 쿠초라의 무덤에 신선한 화환을 놓는 사진을 고집했고 덕분에 장례식 중 화환을 놓는 의식이 두 번에 걸쳐 치러졌다고.. * 독일의 전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의 일화에도 쿠초라가 등장한다. 그는 축구 경기장의 이름이 여성의 이름으로 헌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긴 질문이 '그럼 우리는 그걸 뭐라 불러야 되나? 에른스트 쿠초라의 부인 경기장?'이었다. * 쿠초라의 흔적은 지금 샬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샬케의 사무실 이름이 에른스트 쿠초라이다. 또한, 샬케의 지정학적 위치도 쿠초라로 부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